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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장에서는 이슬람이 규정한 신앙의 실천사항을 다룬다. 이 가운데는 예배(쌀라), 단식(싸움), 자선-기부 혹은 “희사(자카)”와 순례(핫즈)가 있다. 

하나님께서 이들 실천 사항을 명하신 방식이 이들 실천사항으로 하여금 영적인 제반목적에 합치하고 인간의 필요를 만족시켜 주게 한다. 그 중에는 매일 실행해야 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한 주에 한 번·한 달에 한 번·일 년에 한번 실행해야 되는 것이 있고 적어도 평생에 한 번은 실행해야 되는 것도 있다. 결국 이러한 실천 사항은 한 주의 모든 요일, 한 달의 모든 주, 일 년의 모든 달, 그리고 평생의 모든 해에 걸려 있는 셈이며, 특히 이러한 실천을 통하여 전 생애에 하나님의 손길이 닿게 되는 것이다.

이미 지적한 대로 행동과 실천이 없는 신앙은 이슬람에 관한 한 막다른 길목이다. 신앙이란 워낙 아주 민감하며, 극히 효과적일 수 있는 것이다. 신앙은 실천하지 않거나 그냥 내버려두면 생기와 동기유발 능력을 금방 잃어버리고 만다. 신앙에 생기를 주고 신앙이 그 목적에 합치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실천하는 것이다. 실천의 신앙에 자양분을 공급하고, 존속과 효과를 부여한다. 역으로 신앙은 인간을 고무하여 부단한 헌신과 꾸준한 실천으로 유도한다. 이것은 신앙과 실천의 상호관계가 매우 깊고 둘의 상호의존이 쉽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앙이 없는 사람은 뚜렷하게 감화를 받을 만한 곳이 없고 따라서 성취하거나 열망할 만한 가치 있는 목적도 가지지 못하게 된다. 이런 사람의 생은 무의미하며 그날그날 살아가고는 있지만, 이렇게 산다면 아예 사는 것도 아니다. 한편 신앙을 고백해 놓고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를 속이는 것이며 실제로는 신앙을 갖지 않은 것이니, 이런 사람은 스스로 어찌할 수 없이 빗나간 사람이나 진배없다.

이슬람에서 신앙과 실천 사이의 상호관계는 종교제도 전체를 생생하게 반영하며 그 가르침의 심오한 철학을 드러낸다. 이슬람은 여하한 경우에도 영혼과 육체, 정신과 물질, 종교와 실생활의 분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대로 인간을 받아들이며 영육으로 이루어진 그 본성을 인정한다. 이슬람은 인간의 영성을 무시하지 않는다. 영성을 무시한다며,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이슬람은 또한 인간의 육체적 요구를 과소 평가하지 않는다. 육체적 요구가 없다면 인간은 천사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인간은 천사가 아니며 또 천사가 될 수도 없다. 이슬람에 의하면 인간은 피조물의 연속선상에서 중앙에 자리한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를 초월하지도 않는다. 하나님만이 오직 영적인 존재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오로지 물리적·육체적 존재인 것만도 아니다. 이런 부류의 존재는 동물이나 기타 이성 없는 피조물 외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처럼 상보적(相補的)본성을 갖는 존재이기에, 상응하는 요구와 상응하는 필요를 지닌다.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그리고 윤리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이 그것이다. 인간에게 도움을 주어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할 수 있는 종교는 이러한 모든 요구와 필요를 고려에 넣는 종교이며 인간의 영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육체적 욕망을 훈련하는 종교인 것이다. 이런 종교가 바로 이슬람이다. 인간성의 어느 한 면을 억누르거나 균형을 잃거나 한쪽으로만 치우친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 심어준 본성을 무책임하게 무시함은 물론이려니와 그것을 부인하여 학대하는 처사가 될 것이다.

이슬람은 있는 그대로의 인간성을 전적으로 긍정하고 인간의 영적·물질적 복지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종교를 사사로운 문제로 보거나 실생활 전반과 유리된 실체로 보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종교란 공사를 불문하고 전체적인 인생행로에 눈에 띄는 흔적을 내지 못하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의 법에 따라 생활을 조직적으로 영위해 나가지 않는다면 생은 무의미하다. 이슬람이 사회 각 방면-개인적, 사회적 행위, 노동과 산업, 경제와 정치, 국가적, 국제적 제관계 등-으로 그 조직적 감각을 확장해 나가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나 또 같은 연유에서 이슬람은 “세속주의”나 성속(聖俗)의 분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참종교와 의미 있는 생활의 상호작용은 지극히 중요하다. 이것이 이슬람이 사회 각 방면으로 침투하여, 하나님께 가납될 수 있고, 인간에게 자비로운 건전한 방식으로 인간의 제반사를 지도하는 까닭이다.

참종교와 일상생활 사이의 이러한 필연적인 부합의 결과로서, 이슬람은 “엿새는 나 혹은 세상을 위해서 그리고 하루는 주님을 위해서”라는 식의 교리를 중요시하지 않는다. 이런 교리는 결국에 가서는 공허해지고 종교의 활기를 창백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린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교리는 인간 편에서 하나님을 심히 부당하게 대하는 것이며, 인간 자신의 영혼에 해로운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그것은 영적, 윤리적 욕구를 심각하게 무시하는 것인 바, 이러한 영적, 윤리적 요구는 물질적 욕망보다 더한 것은 아니지만, 그에 필적할 만큼 중요하다. 그것은 또한 인간성을 위험하게 분열시키는 것이며, 이러한 불균형은 곧 타락의 징후이다. 마찬가지로 엿새는 수도생활이나 명사에만 몰두하고 하루는 자신을 위해 보낸다고 해서 더 나아지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균형이 깨어지기는 매일반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고 논리적인 행로는 이슬람이 제시하는 행로가 된다. 인간은 상보적 본성을 지닌 존재이고 피조계(被造界)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영혼이나 육체를 등한시하거나 어느 한 쪽을 다른 쪽보다 우위에 둔다면 심각한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영혼과 육체 모두에 자양분을 주고, 양자를 균형 있고 건전하게 육성시키는 것이 인간의 정의감과 성실감 그리고 의지력과 진실성을 가늠하는 가장 어려운 시험이다. 그리고 인간을 도와 이 시험에 통과시키고자, 이슬람이 신앙의 규칙적인 실천사항을 가지고 인간을 구원하러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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